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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옛 직업 9탄 : 찻장수 – 손수 끓여 나르던 따뜻한 한 잔

by 마산아지매 2025. 6. 29.

사라진 옛 직업 9탄 '찻장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사라진 옛 직업 9탄 : 찻장수 – 손수 끓여 나르던 따뜻한 한 잔
사라진 옛 직업 9탄 : 찻장수 – 손수 끓여 나르던 따뜻한 한 잔

 

골목을 누비던 찻장수의 하루

지금은 카페가 골목마다 자리하고 있고, 커피머신 하나면 몇 초 만에 따뜻한 음료를 만들 수 있는 시대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는 뜨끈한 한 잔의 차 한 모금이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던 소중한 선물이었습니다. 찻장수는 바로 그런 따뜻한 한 모금의 정을 들고 사람들을 찾아 다니던 분들이었습니다.

찻장수는 흔히 보리차나 결명자차, 때로는 대추차나 생강차 같은 몸에 좋은 한방차를 끓여 보온통에 담고 다니시며 사람들에게 한 잔씩 건네곤 하셨습니다. 거리에서는 “따뜻한 보리차요” 하는 정감 어린 외침이 울려 퍼졌고, 그 목소리를 따라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당시의 찻장수는 단순히 음료를 파는 상인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를 이어주고 이웃 간의 정을 나누던 작은 공동체의 연결자와 같은 존재였지요.

그분들은 작고 둥근 손수레에 보온통과 찻잔을 싣고 다니시기도 하고, 이른 아침이나 이른 저녁 시간에 고무 다라에 찻물을 담아 들고 다니시기도 했습니다. 잔은 대부분 스테인리스나 양은으로 된 얇은 금속잔이었고, 얼기설기 바구니에 담긴 컵들은 찻장수님의 손을 거쳐 깔끔하게 닦여졌습니다. 찻잔을 건네는 손길도, 받는 손길도 모두 정중하고 조심스러웠습니다.
거기에는 단순한 '음료 거래' 이상의 따뜻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끓던 찻물 속 풍경

찻장수가 계시던 자리에는 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허리를 구부려 손에 찻잔을 받아든 이들은 뜨끈한 차 한 모금을 넘기며 숨을 고르셨고, 그렇게 모인 이들 사이에는 자연스레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날의 날씨, 시장 물가, 아이들 이야기, 심지어는 동네 어귀에서 있었던 작은 해프닝까지. 따뜻한 찻물이 오고 가는 사이, 사람들 사이의 온도도 조금씩 데워졌습니다.

찻장수님 역시 이야기를 참 좋아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시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간간이 "그래요, 요즘 참 어렵죠" 하고 짧은 공감을 건네기도 하셨지요. 어떤 날에는 소식을 몰랐던 누군가에게 필요한 정보를 건네기도 했고, 누군가에게는 말없이 따뜻한 차 한 잔만 건네주고 조용히 자리를 떠나시기도 했습니다.
그 모습이 어쩌면 가장 찻장수다운 풍경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겨울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물을 담아주는 그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참 포근하고 따뜻했습니다. 손끝이 얼어 있던 어르신이나 이른 아침 출근길의 일꾼들은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며 "아이고, 이거 하나 마시면 오늘 하루 든든하겠네" 하고 웃으시곤 했습니다. 마치 그 차 한 잔이 하루의 시작을 지켜주는 의식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찻장수는 단순히 지나가는 장사꾼이 아니라, ‘그 자리에 늘 계신 분’이었습니다. 특정한 시간대, 특정한 장소에 서서 같은 미소로 사람들을 맞이하셨기에, 동네 주민들은 마치 가족처럼 느꼈고, 자연스럽게 그분의 안부를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왜 안 나오셨을까?”
그런 마음은 곧 서로를 향한 관심이 되었고, 그 작은 연결이 동네를 따뜻하게 데워주었습니다.

 

사라졌지만 마음에 남아 있는 따뜻함

이제는 그런 찻장수님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없습니다. 보리차나 결명자차는 생수처럼 편의점에서 구할 수 있고, 커피전문점에서는 다양한 차 종류를 전문적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누군가가 찻물을 들고 다니며 우리에게 건네줄 필요는 없어졌지만, 그렇다고 찻장수가 남긴 정서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바쁘고 각박해진 지금의 삶 속에서, 그 시절 찻장수님의 손길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물건보다 마음을 건네던 시대, 돈보다 정이 더 앞서던 풍경 속에서 우리는 작은 찻잔 하나로도 서로를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그 한 잔 속에 담긴 따뜻한 온기, 정성스러운 마음, 그리고 사람 냄새는 어떤 고급 찻집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특별한 감동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너무 쉽게, 너무 빠르게 마시고 소비하고 지나갑니다. 하지만 가끔은, 찻장수님의 느릿한 걸음과 찻물의 김처럼, 천천히 스며들던 그 따뜻함을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누군가의 손에 쥐어진 찻잔 하나가 마음을 위로하고,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춰주던 그 시절처럼, 우리도 잠깐은 멈춰 서서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넬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찻장수님이 들려주신 것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함께 나누는 ‘시간’과 ‘정’이었습니다. 그분의 조용한 미소, 뜨거운 찻물을 따르던 손길, 그리고 그 옆에서 함께 웃고 떠들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우리 기억 속 깊은 곳에 오래도록 남아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찻장수라는 직업은 사라졌지만, 그분이 전하신 따뜻함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 있습니다. 삶이 점점 더 복잡해질수록, 우리는 그런 작은 따뜻함을 더욱 필요로 하게 됩니다.

오늘 하루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건네고 싶으시다면, 뜨끈한 차 한 잔을 준비해보세요. 직접 끓여서, 조용히 잔을 내밀며 "차 한 잔 드시겠어요?" 하고 건네는 그 순간, 찻장수님의 마음이 여러분의 손끝에서 다시 이어질지도 모릅니다.